연달아 카지노 찍먹해보고 느낀 차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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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사이에 출장을 겸해서 여기저기 호텔 카지노를 들렀습니다. 여행이라기보다, 일정 끝나고 잠깐씩 들르는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아서 적어둡니다.
가장 먼저 갔던 곳은 필리핀 마닐라의 시티 오브 드림스 쪽 카지노였습니다. 저녁 미팅 끝나고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내려갔다가 입구에서 드레스 코드 때문에 한 번 막혔고, 결국 객실로 다시 올라가 긴 바지 갈아입고 내려왔습니다. 안에 들어가니 슬롯 기계 소리랑 음악이 섞여서 귀가 멍멍한데, 옆자리 현지인 아저씨가 계속 같은 슬롯만 누르면서 "이 자리가 오늘 좋아"라고 농담을 던지더군요. 저는 소액으로만 몇 번 눌러보다가, 생각보다 빨리 칩이 녹는 걸 보고 30분 만에 나왔습니다.
그 다음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있는 벨라지오 카지노. 여기서는 블랙잭 테이블에 앉았다가 테이블 최소 베팅 단위를 잘못 보고 들어갔습니다. 15라고 적혀 있는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50 테이블에 앉은 거였죠. 딜러가 친절하게 설명해줬지만 이미 칩을 올려놓은 상태라 한두 판은 그냥 치고, 바로 칩 정리해서 더 낮은 테이블로 옮겼습니다. 카드 몇 번 연달아 져서 약간 열 오르다가, 맞은편에 혼자 여행 온 듯한 사람이 조용히 메모장에 결과를 적고 있는 걸 보고 괜히 정신이 들어서, 거기서 미리 그만뒀습니다.
유럽에서는 파리 근교 작은 카지노 호텔을 갔는데, 여기서는 테이블 분위기가 확실히 조용했습니다. 룰렛 테이블에서 모두가 거의 속삭이듯 이야기하고, 칩 놓을 때도 대체로 신중하게 놓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숫자 몇 개 골라서 소액으로만 걸다가, 갑자기 한국인 직원이 한국어로 "여기서도 이런 거 하시네요"라고 말을 걸어와서 괜히 민망했습니다. 그 말 듣고 바로 일어나서 바 쪽으로 가서 와인만 한 잔 마시고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선 현지 분이 추천해준 호텔 카지노를 갔는데, 입구부터 담배 냄새가 강해서 오래 버티기 힘들더군요. 바카라 테이블에서 주변 사람들 칩 올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어디에 어떻게 걸어야 할지도 제대로 안 보였습니다. 딜러는 계속 같은 톤으로 진행하는데, 제 옆에서 전화 통화하면서 게임하는 사람이 너무 시끄러워서 한 두 판만 하고 바로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시끄러운 데선 오래 안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다낭 근처 리조트 카지노를 들렀습니다. 이곳은 객실에서 바로 내려갈 수 있어서, 새벽에 잠이 안 와 혼자 내려가봤습니다.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슬롯 구역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테이블 게임은 절반 정도만 열려 있었습니다. 텍사스 홀덤 비슷한 테이블이 있어서 잠깐 구경만 했는데, 영어랑 현지어가 섞여 있어서 규칙은 알아도 흐름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습니다. 거기선 그냥 앉지 않고, 10분 정도 구경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카오는 갤럭시 마카오 쪽을 갔습니다. 규모는 압도적인데, 사람도 그만큼 많았습니다. 여기서는 전자식 룰렛에 앉아서 시간만 보냈습니다. 화면으로만 베팅하고 실제 룰렛은 가운데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딱히 사람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편하긴 했습니다. 다만, 옆자리에서 혼잣말로 계속 숫자를 중얼거리며 베팅하는 분이 있어서 집중이 잘 안 되더군요. 여기서 약간 올라왔다가 한 번에 다시 떨어지는 전형적인 패턴을 경험하고, 더 올라가기 전에 멈춘 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홍콩에서는 정식 카지노 대신, 홍콩섬 쪽에 있다는 사설 홀덤펍을 지인의 소개로 가봤습니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니 일반 술집처럼 생겼는데 안쪽에 테이블이 몇 개 있고, 칩은 직접 돈으로 사는 구조. 처음 앉은 테이블에서 플랍에 탑페어가 떠서 과감하게 밀었다가, 리버에 상대가 스트레이트를 맞추는 바람에 시작한지 20분 만에 바이인 절반을 날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분위기 좋게 농담 섞어서 위로해주는데, 제 속으론 괜히 이 공간이 낯설어져서 바로 칩 정산하고 나왔습니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카지노는 출입 절차가 생각보다 깐깐했습니다. 여권 검사, 입장료 문제, 드레스 코드까지 한 번에 체크해서 입구에서 줄 서 있는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조용한 편이었는데, 블랙잭보다는 바카라 쪽에 사람이 몰려 있었습니다. 저는 비교적 한산한 슬롯 구역 쪽에 앉아서 천천히 게임하다가, 주변에 서 있던 직원 분이 계속 뒤에서 서 있는 느낌이라 신경이 쓰여 금방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때 느낀 건, 시설이 좋고 깨끗해도 누가 옆에 서 있는지만으로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돌아와서는 회사 근처에 있다는 홀덤펍을 호기심에 한 번 가봤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조명은 어둡고, 화면에는 대회 중계가 계속 나오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소액 토너먼트에 참가했는데, 주변 참가자들이 서로 이름도 알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하는 "단골 분위기"가 강해서 저는 완전히 손님 모드였습니다. 초반에 카드가 잘 들어와서 칩이 조금 쌓이자, 옆자리에서 "오늘 처음 오신 거죠?"라고 말 걸어주는데, 괜히 경계심 비슷한 게 올라와서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중반에 올인 콜 받아주다가 탈락하고, 그대로 계산하고 나왔습니다.
여러 나라 호텔 카지노와 사설 도박장을 조금씩 경험해보니, 게임 규칙보다도 공간의 공기, 사람들의 태도, 소리와 냄새 같은 게 훨씬 크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어딘가는 호기심 때문에 또 갈 수도 있겠다 싶고, 어딘가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만 공통적으로, 이 공간에서 오래 머무를수록 현실 감각이 살짝씩 흐려진다는 건 어디나 비슷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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