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 호텔 카지노 돌아다닌 뒤 남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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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호텔 카지노는 마카오 ‘시티 오브 드림즈’였다. 공항에서 셔틀 타고 바로 들어가니까, 냄새부터 다르더라. 담배 냄새랑 향수, 에어컨 찬 공기 섞인 느낌. 체크인 하려고 줄 서 있는데 이미 옆에선 칩 잔소리 섞인 딜러 목소리 들리고. 방에 캐리어만 던져놓고 바로 내려가서 바카라 테이블에 앉았다. 최소 베팅이 생각보다 높아서 처음엔 관망만 하다가, 옆에 앉은 사람 배팅 따라가다 어느새 계획보다 두 배 넘게 쓰고 있었고. 이길 때보다 잃고 칩 바꾸러 카운터 가는 길이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쪽은 톤이 완전히 달랐다. 입장 전에 여권 검사하면서 현지인 구분해서 입장료 받는 것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조용하게 관리되는 느낌. 여기서는 룰렛만 했다. 사람 많지 않은 아침 시간대라 휠 돌아가는 소리랑 칩 부딪히는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테이블에 있던 다른 여행객이 자기 번호만 고집하다가 세 번 연속 맞추고, 그 다음에 그대로 다 반납하는 걸 옆에서 다 봤다. 이상하게 남의 돈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또렷하게 남는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벨라지오에서만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스트립 끝까지 돌아다녔다. MGM 그랜드, 시저스 팔리스, 뉴욕뉴욕까지 카드 열어주는 데는 다 앉아 본 느낌. 블랙잭에서 서렌더를 언제 해야 하는지 헷갈려서 딜러한테 묻다가 뒤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자기 방식대로 설명해 줬는데, 그대로 따라했다가 그날 세션 거의 다 잃고 나왔다. 딜러는 끝까지 표정 변함 없고, 옆 사람들만 이겼다 졌다 한숨 섞인 농담 하고. 방 돌아갈 땐 호텔 복도 카펫 무늬가 눈에 박혀서 어지러웠다.
유럽에서는 파리 근교 카지노 바리에르에 갔었다. 드레스 코드 때문에 입장 전에 셔츠 깃 다시 여미고 운동화로도 될지 걱정했는데, 실제론 생각보다 느슨했다. 여기선 온라인으로만 해보던 텍사스 홀덤 캐시게임을 처음으로 직접 들어갔다. 프리플랍에서 3배 레이즈 했는데, 다 따라오길래 순간 머릿속이 비어버렸다. 턴 카드가 생각대로 안 떨어져서 그냥 체크로 죽어가다가, 리버에 괜히 블러핑 시도했다가 바로 콜 맞고 탄로났다. 팟 밀리는 그 짧은 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줄은.
동남아에서는 호치민의 한 호텔 안에 있는 카지노를 들렀다. 이름은 기억 잘 안 나는데, 들어갈 때부터 칩 환전소 앞에 현지어랑 영어 섞인 목소리가 정신 없었다. 여기서는 슬롯머신만 했는데, 기계마다 테마가 너무 많아서 그냥 크레딧 적게 걸 수 있는 것만 골라 앉았다. 잔잔하게 몇 번 맞다가 한번에 꽤 큰 금액이 들어왔는데, 막상 캐시아웃 하니까 현금으로 바뀐 순간 그게 딱 현실 감각을 데려왔다. 그 돈으로 바로 1층 바에서 맥주 시켜서 마셨는데, 잔에 맺힌 물방울만 무의미하게 보게 되더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는 친구 따라 작은 홀덤펍 비슷한 곳도 가봤다. 간판도 튀지 않고, 안에 들어가면 테이블 몇 개랑 작은 바가 전부인 곳. 스택도 크지 않고, 블라인드도 낮아서 그냥 소소하게 즐기자는 분위기였는데,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진지했다. 토너먼트 막바지에 쇼트스택으로 푸시 올인했다가, 버튼 자리에서 혼자 오래 고민하더니 결국 콜 한 뒤에 나보고 미안하다고 하더라. 기계 음성이 아니라 사람 목소리로 ‘굿 게임’ 듣는 게 이상하게 더 아팠다.
홍콩에서는 호텔 안 공식 카지노는 없어서, 마작방 개조한 사설 도박장 같은 데를 잠깐 들른 적이 있다. 좁은 방에 테이블 두 개, 벽에는 오래된 달력, 에어컨 바람은 나오는지 마는지. 칩도 따로 안 쓰고 그냥 노트에 적어 두고 현금 주고 받는 시스템. 하우스 룰 설명하는데도 목소리가 다 낮아져 있다. 거기선 진짜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환기 잘 안 되는 공기, 닫힌 문, 웃음기는 없는 분위기. 소액만 건 싯앤고 느낌으로 몇 판 돌리고 그냥 빠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다시 마카오, 이번엔 갤럭시에 갔다. 이미 예전에 크게 잃어본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아예 예산을 소액으로 잘라서 포커룸 구경만 하려고 했다. 그래도 사람 심리가, 딜러가 새로 교대 들어오면 괜히 운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옆 테이블에서 한 사람이 리버에서 기적 같은 카드 맞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대로 칩 전부 캐시아웃 하고 사라졌다. 그 장면 보고 나니까 이상하게 더 이상 테이블에 앉고 싶지가 않았다.
돌아와서 정리해보면, 호텔 카지노든 홀덤펍이든 사설장이든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돈 액수보다 분위기랑 그때의 감정이다. 여권 들고 입장 줄 서 있던 시간, 칩을 쌓아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는 손끝 감각, 새벽에 방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치는 얼굴. 여러 나라를 돌았는데도, 결국 각자 자기 한도와 거리를 어디까지 가져갈지에 대한 문제만 남는다. 다음 번에 또 가게 된다면, 장소 선택보다 먼저 그 선부터 다시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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