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카지노 다녀보고 느낀 현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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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이랑 여행 겸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호텔 카지노들을 찍게 됐습니다. 예전엔 그냥 영화 속 배경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나라별로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나중에 좀 정리해두고 싶어졌어요.
마카오에서는 윈 마카오랑 그랜드 리스보아에 갔습니다. 첫날 윈 마카오에서는 조명이랑 내부 인테리어가 생각보다 차분해서, 그냥 큰 호텔 로비 느낌으로 들어갔는데, 블랙잭 테이블에 앉자마자 칩이 왔다 갔다 하니까 손에 식은땀이 나더군요. 딜러가 영어랑 중국어 섞어 쓰는데, 옆자리 아저씨가 계속 사이드 베팅 추천하면서 손짓으로 알려줘서 분위기에 휩쓸려 올인 비슷하게 갔다가, 다섯 번 중 네 번을 말아먹고 마지막에 겨우 한 판 크게 먹고 나왔습니다. 이기고 나왔는데도 속이 이상하게 울렁거리는 느낌이었어요.
홍콩에서는 정식 카지노가 없어서, 페리 타고 다시 마카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침사추이 게스트하우스 공용 라운지에서, 늦은 밤에 다 같이 맥주 마시면서 “오늘 어디서 얼마나 잃었냐” 이런 얘기만 계속 돌았습니다. 그때는 웃으면서 들었는데, 각자 휴지에 칩 계산하면서 정리하는 모습이 묘하게 쓸쓸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마리나 베이 샌즈 카지노에 들어가봤습니다. 입구에서 여권 보여주고 입장료 안 내도 되는 게 외국인 특혜 느낌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니 관광객 + 현지인 섞여서 완전 쇼핑몰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슬롯머신 구역 한켠에 앉아서 ‘라이트하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만 단위로 칩을 천천히 썼는데, 옆자리 중년 커플이 몇 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거의 말도 안 하고 버튼만 누르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정신이 딱 들더군요. 거기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져서, 한 두 판 더 돌리고 바로 나와서 위쪽 쇼핑몰이랑 수영장만 구경했습니다.
미국에서 라스베이거스를 갔을 때는 벨라지오랑 시저스 팰리스 쪽 위주로 돌아다녔습니다. 벨라지오 포커룸에서 텍사스 홀덤 캐시게임 작은 판에 앉았는데, 생각보다 로컬들이 장난 아니게 실전적이더군요. 옆자리 백발 아저씨가 첫판에 일부러 약하게 치면서 분위기 파악만 하다가, 제가 플랍에서 탑페어 맞고 베팅 세게 넣은 걸 콜하고, 턴/리버에서 완전히 말려서 다 내주게 되었습니다. 테이블 떠날 때 그 아저씨가 “It’s tuition, you’ll remember”라고 툭 던지는데, 진짜 수업료 낸 기분이었어요.
유럽에서는 체코 프라하에 있는 킹스 카지노에 들렀습니다. 포커 대회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외국인들이 엄청 많고 담배 연기랑 소음이 섞여서 공기가 좀 무겁더군요. 거기서는 게임은 많이 안 하고, 그냥 현지 친구가 하는 거 뒤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 눈빛이 전반적으로 예민해서, 핸드폰 카메라 꺼낼 생각도 안 났고, 물 한 잔 가져다 놓고 조용히 서 있으면서 칩 더미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 봤습니다. 카드 한 장 잘못 펼치면 욕 나올 것 같은 공기였습니다.
동남아에서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나가월드 가봤는데, 이쪽은 완전히 또 다른 세계였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에어컨 빵빵하고 화려한데, 바로 밖으로 한 발만 나가면 오토바이 소리랑 노점이 이어져서 온도 차이가 너무 심했어요. 바카라 테이블에서 한국 사람들 꽤 보였고, 어떤 형은 거의 혼잣말로 “이번엔 진 나오겠지… 아니야 뱅커겠지…” 계속 중얼거리면서 칩을 옮기는데, 표정이 반쯤 비어 있는 느낌이라 보기 좀 불편했습니다. 딜러는 습관처럼 카드 분배하면서도 시선이 손님들 지갑 쪽을 같이 훑는 느낌이었고요.
베트남에서는 다낭 근처에 있는 리조트 카지노에 들어가봤습니다. 외국인 전용이라 조용한 편이었는데, 룰렛 돌리면서 그냥 휴가 기분 내자는 마음에 소액으로 색깔만 찍고 놀았습니다. 옆에서 러시아 커플이 계속 같은 숫자에만 몰빵하다가 한 번 터져서 소리 지르는데, 그 순간 주변 사람들까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더군요. 다들 속으로 “저 사람 안 터지면 오늘 밤 분위기 되게 구리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선 시티 오브 드림스랑 오카다 마닐라 들렀습니다. 이쪽은 한국인, 중국인, 현지인 다 섞여 있고, 외곽에선 카지노 셔틀 기다리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줄이 길었어요. 한 번은 블랙잭 하는데, 옆자리에서 계속 ‘배팅 대신 눌러달라’는 식으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어서 귀찮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절하기 애매한 분위기라 대충 웃어 넘겼는데, 나중에 직원이 조용히 와서 그 사람한테 뭐라고 하더니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칩 대신 현금 빌려주고 수수료 받는 브로커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한국 돌아와서는 한동안 카지노 안 가려고 했는데, 동네에 있는 홀덤펍을 친구 따라 몇 번 갔습니다. 홍대 근처 작은 곳이었는데, 현금 대신 점수 제도로 해서 따라앉기 쉬웠어요. 근데 그게 또 미묘하더군요. 돈이 바로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지 않으니까 덜 위험해 보이는데, 막상 계산해 보면 새벽 두 시쯤에 사람들 지갑이 거의 비슷하게 얇아져 있습니다. 딜러랑 사장, 단골 몇 명이 서로 이름 부르면서 농담하는 사이, 처음 온 사람들만 말없이 떨어져 나가는 그림이 반복됐습니다.
여기저기 다녀보니, 장식이 화려하든 허름하든, 결국 안에서 벌어지는 패턴은 비슷했습니다. 누군가는 오늘 운 좋다고 웃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괜찮은 척하지만 얼굴이 굳어 있고, 누구도 자기 얘기를 끝까지 솔직하게는 말 안 하더군요. 저도 그렇고요. 여행 다니면서 이런 데 구경해 보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시 거기에서 시간을 보낼지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럴 이유는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가끔 그 조용한 순간들만 기억나거든요. 칩 다 잃고, 컵에 남은 얼음만 녹아가는 걸 멍하니 보고 있던 밤 공기 같은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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