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 호텔 카지노 돌아다녀보니 현실은 이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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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은 아니고, 그냥 쉬고 싶어서 지난 1년 동안 틈날 때마다 호텔 카지노를 끼고 있는 곳들 위주로 골라 여행을 다녔습니다. 처음엔 그냥 영화에서 보던 느낌 기대했는데, 막상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보니까 공통점도 있고 완전히 다른 부분도 꽤 있더군요.
가장 먼저 갔던 건 필리핀 마닐라 쪽 Okada Manila였어요. 체크인하고 짐만 던져놓고 1층 카지노 내려갔는데, 실내가 예상보다 훨씬 밝고 시끄럽기도 했습니다. 저녁 9시쯤이라 테이블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저는 일단 바카라 테이블 최소 베팅 낮은 자리부터 찾아봤습니다. 처음엔 500페소짜리 칩으로만 걸다가 갑자기 패가 몇 번 연속으로 맞으니까 괜히 자신감이 올라서 배팅을 키웠는데, 그 다음부터 세 판 연속으로 틀리면서 30분 만에 계획했던 하루 예산의 절반이 날아갔습니다. 그때 옆에 앉은 현지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처음 오면 다 그래. 끊을 타이밍 못 잡으면 계속 잃는다’고 툭 던지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버리더군요. 괜히 그 말이 더 쓸데없이 와 닿았습니다.
미국에선 라스베이거스 Bellagio에서 하루 정도만 잡았는데, 여기선 슬롯머신보다는 블랙잭을 주로 했습니다. 새벽 2시쯤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고, 딜러가 계속 농담 던지고 분위기를 풀어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굳이 이야기에 끼어들진 않았지만, 기본전략 테이블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그대로만 하자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한 번은 16에 딜러 10이라 어지간하면 히트지만 매번 여기서 bust 나는 게 너무 싫어서 그냥 스탠드했는데, 딜러가 20 만들면서 제 칩이 또 나갔습니다. 딜러가 ‘책대로 했으면 어차피 졌다’고 웃으면서 말해줬는데, 그 와중에 옆자리에 있던 사람은 그 상황을 보고도 계속 감으로만 베팅하고 히트/스탠드 결정하더군요. 결과는 뻔했고, 1시간쯤 뒤에 칩 통이 거의 비어 있는 걸 혼잣말로 욕하면서 보게 됐습니다.
유럽 쪽에선 프랑스 Casino Barrière de Deauville도 들렀습니다. 드레스코드가 있다고 해서 셔츠랑 자켓 챙겨갔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단 딱딱하진 않았습니다. 여기선 룰렛만 조금 했어요. 빨강/검정 번갈아가면서 소액으로만 걸다가, 옆에서 계속 홀수/짝수로만 베팅하는 사람을 봤는데, 한동안 홀수만 계속 나오니까 저도 그냥 따라 들어가 봤습니다. 그 타이밍에 딱 짝수가 터져서 저만 잃고 그 사람은 이전에 따놓은 걸로도 여전히 수익이더군요. ‘따라 들어갈 거면 조금 더 일찍 들어가던가, 아예 안 들어가던가’라는 생각만 남았습니다.
캄보디아에선 NagaWorld에 들렀는데, 여기서는 카지노만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사설로 운영되는 하우스 느낌의 테이블도 있다고 해서 현지 친구 따라 한 번 가봤습니다. 딱 들어가자마자 공기부터가 호텔 카지노랑 다르더군요. 실내가 좁고 담배 냄새도 훨씬 심하고, 칩 대신 현금이 그대로 오가는 테이블도 있었고요. 홀덤 테이블에 앉았는데, 레이크도 좀 세고 딜러가 카운트할 때 약간 느슨하게 하는 구석이 있어서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한 번은 플러시 드로우로 리버까지 따라갔다가 결국 못 맞추고 폴드했는데, 상대가 보여준 핸드는 생각보다 약한 페어였습니다. 호텔 카지노였으면 그냥 잊었을 상황인데, 사설이다 보니 괜히 ‘내 플레이 정보를 너무 빨리 노출한 거 아닌가’ 같은 쓸데없는 경계심이 더 생기더군요.
베트남 다낭 쪽에 있는 Crown Plaza 카지노에선 외국인 전용이라 그런지 현지 사람 거의 못 봤고, 주로 단체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여기선 드래곤 타이거 테이블에 잠깐 앉았는데, 게임이 워낙 단순해서 그런지 10분 만에 지루해졌어요. 그 대신 슬롯 쪽으로 옮겨서 잔돈 비우듯이 소액으로만 계속 돌렸습니다. 좀 신기했던 건, 옆자리 아주머니가 제 기계가 한 번 크게 터진 뒤 자리를 바로 바꾸더니 제가 앉던 자리에 앉아서 다시 돌리더라는 점이었죠. ‘자리 운’ 비슷한 걸 믿는 사람들 생각보다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습니다.
마카오에선 City of Dreams랑 Wynn Macau 두 곳을 들렀습니다. 여긴 분위기 자체가 ‘여기선 진짜 돈 굴리는 사람만 오라’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하이리밋 룸 쪽은 문 앞에서부터 기가 약해져서 구경만 하고 나왔습니다. 일반 테이블에서 바카라 조금 했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계속 ‘뱅커/플레이어 줄’을 종이에 그리면서 분석하더군요. 저는 그냥 그날 정한 예산 안에서만 왔다 갔다 했고, 딱히 큰 손해도 이득도 없이 나왔습니다. 대신 그날 새벽에 객실에서 내려다보는 마카오 야경이 묘하게 허탈하게 느껴지더군요. 몇 시간 동안 집중해서 판을 보고 있다가 올라와서 창밖을 보니까, 결국 남는 건 피곤함이랑 사용 내역뿐이구나 싶었습니다.
홍콩에선 정식 호텔 카지노가 없어서, 친구 소개로 소규모 홀덤 펍에 한 번 갔습니다. 관광객보단 유학생, 현지 직장인 비율이 높아 보였고, 경기력 차이도 꽤 났어요. 블라인드도 작고 기본 바이인도 낮았는데, 한 테이블에 늘 앉아 있는 레귤러 몇 명이 분위기를 사실상 주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턴에서 세미 블러프로 크게 레이즈를 쳤다가, 리버에서 상대가 천천히 체크-콜만 하는 식으로 제 칩을 조금씩 가져갔습니다. 끝나고 나서 ‘여기 자주 오냐’고 물어보길래 처음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오늘은 수업료 냈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이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싱가포르 Marina Bay Sands에서는 입장할 때부터 분위기가 좀 더 관리된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에선 굳이 판에 오래 앉기보단, 그냥 이런 시스템을 구경해 보는 느낌으로 가볍게만 했어요. 시크 보 테이블에서 딜러가 주사위 흔들 때마다 테이블에 붙은 사람들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는 걸 보는 게 더 재밌었달까요. 여기서 딱 정한 예산만 쓰고 비교적 깔끔하게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제일 기억에 오래 남는 곳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여러 군데 돌다 보니, 결국 남는 건 그 나라 특유의 분위기와, 그날 같이 앉았던 사람들 표정, 그리고 내가 예산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 정도였습니다. 어느 나라든 공통적으로 느낀 건, ‘딱 정해 둔 금액, 딱 정해 둔 시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진다는 거였습니다. 호텔 카지노든, 사설 하우스든, 홀덤 펍이든, 그 선을 넘어가느냐 마느냐가 나중에 떠올렸을 때 후회로 남느냐, 그냥 여행 중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느냐를 가르는 기준 같았습니다.
지금은 굳이 일부러 카지노를 찾아다니진 않습니다. 그래도 가끔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 호텔 로비를 지나면서 칩 소리랑 테이블 위 조명만 잠깐 보면, 예전에 겪었던 그 긴장감이 아주 약하게만 다시 올라오곤 합니다. 그 정도 선에서 멈추는 게 저한테는 딱 맞는 거리 같아서, 당분간은 그렇게 지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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